
미국 뉴욕에 센트럴 파크에서는 매년 여름 필름 페스티벌을 합니다.
우연히 뉴욕 방문 시 기간이 맞아 놀러 갔었는데,
마침 <제인>이라는 영화를 상영하더라고요.
다큐 영화인데 제인 구달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였어요.
커다란 스크린 너머로 보이는 건 우리가 흔히 아는 인자한 할머니가 아니었습니다.
20대의 젊고 열정적인, 때로는 무모해 보일 정도로 단단한 눈빛을 가진 한 여성이었죠.
60년 전 아프리카 밀림에서 낡은 공책에 침팬지의 일거수일투족을 적어 내려가던 그녀의 뒷모습은 전율을 일으켰습니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화려한 무대 위 스타였던 이효리 씨가 왜 인생의 멘토로 이 할머니를 꼽았는지,
그리고 왜 수많은 현대인이 여전히 그녀의 이름 앞에서 숙연해지는지 말이죠.
가장 강렬한 에피소드 하나를 꼽으라면,
역시 곰베 하천 국립공원에서 그녀가 목격한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백발의 데이비드)'의 행동입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인간을 정의하는 유일한 잣대는
'도구를 사용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학위도 없던 이 젊은 여성은 숲속에서 놀라운 광경을 봅니다.
침팬지가 나뭇가지를 꺾어 잎을 떼어내고,
그걸 개미굴에 집어넣어 개미를 낚아 올리는 모습이었죠.
이는 당시 과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습니다.
그녀의 스승 루이스 리키 박사는 이 보고를 듣고 이렇게 전보를 보냈습니다.
"이제 우리는 '도구'를 다시 정의하거나,
'인간'을 다시 정의하거나,
아니면 '침팬지'를 인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과학적 근거도 없이 '직관'과 '인내'만으로 밀림에 들어간 그녀가
인류사의 오만을 무너뜨린 결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이후 그녀의 삶은 성공 가도처럼 보였습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고,
전 세계적인 스타 과학자가 되었죠.
하지만 그 이면은 지독하게 냉소적이었습니다.
당시 언론은 그녀의 연구 결과보다 '그녀의 다리가 얼마나 예쁜지',
'금발의 여성이 야생에서 어떻게 버티는지'에 더 집중했습니다.
"금발 미녀를 내세운 마케팅"이라는 비아냥도 견뎌야 했죠.
심지어 주류 과학계는 그녀가 침팬지들에게 번호 대신 '이름'을 붙여주고
그들의 감정을 기록하는 것을 두고 "비과학적이고 감상적이다"라며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제인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관심을 이용해 침팬지들의 권리를 주장했죠.
그녀는 자신의 유명세를 개인의 영광이 아닌,
목소리 없는 생명체들의 확성기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제인이 평생 숲에서 평화롭게 살았을 거라 오해합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가장 뼈아픈 '실패'이자 '인간적인 고뇌'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바로 침팬지들 사이의 잔혹한 전쟁을 목격했을 때입니다.
그녀는 침팬지가 인간처럼 사랑하고 공감하는 존재라고 믿었지만,
그들이 서로를 잔인하게 죽이고 동족을 포식하는 장면을 보며 깊은 우울에 빠졌습니다.
"인간과 닮았기에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믿음이
"인간과 닮았기에 이토록 잔인할 수 있는가"라는 실존적 회의로 변한 것이죠.
이 고뇌는 그녀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침팬지를 신비화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생명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1986년, 한 컨퍼런스에서 서식지 파괴와
침팬지 실험실의 참상을 마주한 뒤,
그녀는 사랑하는 숲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1년 중 300일 이상을 호텔방과 비행기에서 보내며 전 세계를 도는 '환경 투사'가 된 것입니다.
숲에서의 평온한 삶을 스스로 포기한 것,
그것이 그녀 인생에서 가장 큰 희생이자 결단이었습니다.
제인의 가장 매력적인 점은 그녀가 대단한 카리스마를 가진 여장부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녀는 본래 매우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인 소녀였습니다.
하지만 그 '내성적임'은 숲속에서 몇 시간이고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침팬지를 기다릴 수 있는 '인내'의 자산이 되었습니다.
사회성이 부족하다거나 강인함이 없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성격적 결핍을,
그녀는 관찰자로서의 최고의 무기로 승화시켰습니다.
결핍을 극복하는 방식이 '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나의 특성을 도구로 삼는 것'임을 그녀는 몸소 보여준 셈이죠.
우리는 지금 '연결'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단절되어 있습니다.
기후 위기, 혐오, 그리고 인간 소외.
이 복합적인 위기 속에서 제인 구달이 다시금 주목받는 이유는
그녀가 '공감의 확장'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과학이 객관성이라는 미명 아래 생명체에 번호표를 붙일 때,
그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대상화된 존재를 인격체로 대우하는 것,
그것이 제인이 제안한 혁명이었습니다.
인공지능이 세상을 지배하는 이 시대에,
타자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는 그녀의 태도는
우리가 지켜야 할 마지막 '인간성'이 무엇인지 묻게 합니다.
제인 구달을 상징하는 단 하나의 장면을 꼽으라면,
늙은 침팬지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가
그녀의 손을 거부하지 않고 살며시 쥐어주던 순간입니다.
제인이 건넨 견과류는 받지 않았지만,
그녀의 손을 꼭 쥐어주며 눈을 맞춘 그 찰나.
이 장면은 지식이나 물질적 교환보다 중요한 것이
'존재 대 존재로서의 신뢰'임을 보여줍니다.
언어라는 도구 없이도 생명은 서로를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이 상징적 순간은,
그녀가 평생을 바쳐 증명하고자 했던 '모든 생명은 연결되어 있다'는 진리의 압축판입니다.
흔히들 그녀를 환경 보호가라고 부르지만,
제 관점에서 그녀는 '종(種)과 종 사이의 통역사'에 가깝습니다.
그녀는 인간의 언어로 자연의 비명을 번역했고,
자연의 침묵 속에 담긴 경이로움을 인간의 가슴에 이식했습니다.
우리는 그녀가 훌륭해서 존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녀가 보여준 '태도'가 우리 마음속에 잠자던 이타심을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우리에게 "자연을 구하라"고 명령하는 대신,
"너희도 자연의 일부임을 기억하라"고 나지막이 속삭입니다.
작년, 그녀가 강연 투어 중에 평온하게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잠시 멍하니 창밖을 보았습니다.
90 평생을 쉬지 않고 움직였던 그 동력은 어디에서 왔을까.
이효리 씨가 왜 그녀를 그토록 경외했는지,
왜 센트럴 파크에 모인 수많은 인파가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에 숨을 죽였는지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그녀의 메시지를 따라 일상에서 작은 변화를 시도해봅니다.
거창한 운동이 아니더라도,
길가에 핀 이름 모를 풀꽃을 1분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제가 거대한 생명의 그물망 속에 안전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얻었습니다.
그녀는 떠났지만,
그녀가 기록한 수만 장의 관찰 노트와 우리에게 던진 질문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당신은 오늘, 당신의 주변을 스쳐 지나가는 작은 생명들의 이름을 불러본 적이 있나요?"
세상을 바꾸는 건 거대한 구호가 아니라,
대상을 향한 그 지독하고도 다정한 '관심'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오늘발견한 작은 존재, 생명의 다정함'를 기록하며 그녀를 추모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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