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을 앞둔 몇일 전, 저는 광화문 광장에 있었습니다.
세상을 들썩이게 했던 BTS의 컴백 콘서트 열기가 여전히 공기 중에 남아있는 듯했거든요.
수만 명의 '아미'들이 한국어로 노래를 따라 부르고,
격동의 역사를 가진 한국의 과거를 몸과 마음에 새기고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신(新)영웅들의 모습을 담아낸 무대 의상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며 문득 한 남자가 떠올랐습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고 외쳤던 사람.
남산 백범 광장에 웅장하게 서있는 그를 만나러 갑니다.
성곽길을 따라 오르며 마주한 김구 선생의 동상은,
그날 광화문의 함성을 미리 듣기라도 한 듯 묘하게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네요.
우리가 아는 인자한 미소의 '백범 김구'는 사실 20대 시절, 꽤나 무시무시한 행동파였습니다.
1896년 치하포 사건 당시, 명성황후 시해의 복수를 하겠다며 일본인 장교를 맨손으로 처단했던 일화는 지금 들어도 서늘합니다.
이건 세련된 정치가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울분에 찬 뜨거운 청년의 서사에 가깝죠.
체포된 후 사형 집행 직전, 고종의 전화 한 통으로 목숨을 건졌던 그 드라마틱한 순간에도 그는 당당했습니다.
그 후의 삶은 우리가 잘 아는 '성공 가도'를 달립니다. 물론 피와 눈물로 점철된 험난한 길이었지만 말이죠.
상하이 임시정부의 문지기가 되겠다고 자원했던 무명 활동가는 결국 주석의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특히 1932년, 이봉창과 윤봉길의 의거를 기획하며 침체되었던 독립운동의 불꽃을 다시 지핀 것은 신의 한 수였습니다. 당시 김구 선생은 현상금만 지금 가치로 수백억 원에 달하는, 일제가 가장 두려워한 전략가였습니다. 그는 명분만 앞세우는 선비가 아니라, 실질적인 타격을 줄 줄 아는 강단 있는 리더였죠.
하지만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깊은 법입니다.
김구 선생의 삶을 들여다보면 뜻밖의 '결핍'과 인간적인 고뇌가 가득합니다.
젊은 시절, 그는 자신의 투박한 외모를 비관해 관상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다 "얼굴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라는 구절에 꽂혀 '마음 좋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하죠.
거울 보며 한숨 쉬던 평범한 청년 김창암(개명 전 이름)의 모습에서 묘한 동질감이 느껴지는건 왜일까요.
가장 큰 비극은 해방 후에 찾아왔습니다.
평생을 바친 독립이었건만, 조국은 이념으로 갈라졌습니다.
남북 협상을 위해 평양으로 올라갔지만 결국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던 그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구차한 안일을 취하지 않겠다"고 토해내던 일갈은, 사실 정치적 승자의 외침이 아니라 고립된 선각자의 처절한 슬픔이었습니다.
김구 선생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진짜 메시지는 단순히 애국심에 호소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백범일지》의 마지막 대목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에서 소름 돋는 통찰을 남겼습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광화문에서 BTS의 무대를 보며 전 세계인이 행복해하던 그 풍경은, 100여년 전 김구 선생이 꿈꿨던 바로 그 '문화 강국'의 완성본이었습니다. 그는 총칼의 힘보다 마음을 움직이는 소프트 파워가 결국 세상을 지배할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던 셈입니다.

광화문의 화려한 조명과 남산의 고즈넉한 성곽길을 차례로 지나오며, 저는 비로소 김구라는 인물의 진심에 닿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가 꿈꿨던 '문화의 힘'은 단순히 화려한 공연이나 예술이 아니라, 타인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성숙한 내면의 힘이었다는 것을요.
그래서 저는 이제 남의 시선이라는 잣대에 휘둘리기보다, 제 마음의 '관상'을 먼저 살피기로 했습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고민하며 에너지를 낭비하던 습관을 버리고, 그 에너지를 나만의 단단한 취향과 철학을 가꾸는 데 쓰기로 마음먹은 것이죠. 내가 먼저 행복하고 내 안의 문화가 풍성해져야, 비로소 주변에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할 수 있다는 백범 선생의 가르침을 일상에서 실천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사실 우리 각자의 삶 속에도 남들에게 말 못 할 '38선' 하나쯤은 있지 않나요? 넘기 힘들 것 같은 현실의 장벽이나 스스로 그어놓은 한계선 같은 것들 말이죠. 저는 이제 그 선 앞에 멈춰 서서 고민만 하기보다, 선생이 그러하셨듯 "이것이 나의 길이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묵묵히 걸어가 보려 합니다.
때로는 외롭고 때로는 흔들리겠지만, 남산 백범광장에서 내려다본 서울의 풍경처럼 제 삶도 조금 더 넓고 깊어지길 기대해 봅니다. 타인의 인정보다 나 자신의 긍지가 더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만으로도, 오늘 제 마음속에는 저만의 작은 '광복'이 찾아온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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