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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FOR MY BEST LIFE

12척의 기적 뒤에 숨은 고독과 결핍, 텅 빈 바다 위, 가장 고독했던 완벽주의자 이순신 인물 탐구

by 마지노마드 2026.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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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열 두척보다 더 놀라운 ‘0’의 숫자

 

 

여러분은 이순신 장군 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시나요?
거북선, 학익진, 불패의 명장.
아마 대부분 ‘승리’를 떠올리실 겁니다.

그런데 제가 붙잡힌 장면은 승리의 순간이 아니라, 그 전의 공백이었습니다.

명량해전을 앞둔 어느 날.
조선 수군은 사실상 궤멸 상태였습니다.
배는 부서져 물이 샜고, 병사들은 탈영했고, 군량은 며칠 분량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조정은 “수군을 없애라”는 명령까지 내립니다.

나라가 먼저 포기한 전쟁이었죠.

그는 파직과 고문을 겪고 백의종군하다가 막 복귀한 상태였습니다.
명예도, 신뢰도, 권위도 이미 바닥.
냉정하게 말하면 그에게 남은 것은 ‘12척’이 아니라 ‘0’에 가까웠습니다.

아군 0.
보급 0.
지원 0.

그런데도 그는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나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문장을 희망으로 읽습니다.
글쎄요.

이제는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그건 낙관이 아니라 체념에 가까운 계산이 아니었을까요?

“아직 열 두척이나 있다”가 아니라
“열 두척밖에 없으니, 이걸로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

그는 상황을 미화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자기 공포부터 객관화했던 것 같습니다.

죽고자 하면 살 것이라는 말은
병사들에게 던진 구호이기도 했지만,
어쩌면 매일 밤 공포에 떨고 있던 본인 스스로에게 건넨

자기 암시였을지도 모릅니다.

 

 

2. 세상이 기억하는 ‘불패의 신화’, 그러나 방식은 의외로 평범했다

 

23전 23승.

기록만 보면 그는 거의 신화에 가깝습니다.
옥포, 한산도, 부산포, 그리고 명량까지.
조선의 바다는 그가 있는 동안 거의 패배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천재 전략가라고 부릅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가 천재라기보다 지독한 관리자에 가깝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전투보다 먼저 한 일은
군량 확보, 병사 훈련, 무기 정비, 물살 조사였습니다.

지도는 직접 그렸고,
화포 사거리를 일일이 실험했고,
병사들의 표정까지 기록했습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활을 쏘고,
매일 점검하고,
매일 반복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화려한 재능이나 천재적임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의 승리는 기적이라기보다
‘준비가 과할 정도로 축적된 결과’에 더 가깝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우리나라의 영웅이지만,

그보다 먼저, 일을 끝까지 해내는 무섭도록 성실한 직업인이 아니었을까요?

 

 

 

 

3. 난중일기, 영웅 대신 한 인간이 드러나는 순간

 

 

하지만 『난중일기』를 펼치는 순간,
그것이 더 두드러집니다.


거기에는 우리가 알던 '성웅' 대신 전혀 다른 사람이 있습니다.

“몸이 아파 밤새 뒤척였다.”
“근심이 깊어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마음이 괴롭다.”

영웅의 문장이라기엔 지나치게 인간적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냥 지친 중년 남자의 푸념 같습니다.

특히 이런 장면이 있습니다.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들은 날.

그는 길게 쓰지 않습니다.
그저 짧게 적습니다.

“통곡하였다.”

딱 다섯 글자.

그날도 그는 울면서 일기를 썼을 겁니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출정 준비를 했겠죠.

저는 이 장면이 이상하게 오래 남습니다.

완벽한 장수라면 감정을 접어두고 냉정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는 누구보다 흔들렸습니다.

정치 감각도 뛰어나지 않았고,
상관과 자주 부딪혔고,
동료들의 시기와 모함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솔직히 처세만 보면 ‘서툰 사람’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더 인간적입니다.

그는 강철 같은 불굴의 사람이 아니라,
유리처럼 예민한 사람이 깨지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단련한 케이스였습니다.

완벽주의는 그의 재능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생존 방식이었는지도 모릅니다.

 

 

 

 

 

4. 왜 지금까지도 '이순신'인가.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왜 400년 전 장수를 아직도 반복해서 이야기할까요.

아마 시대가 묘하게 닮았기 때문일 겁니다.

막상 들여다보면 구조는 늘 비슷합니다.
시스템은 자주 멈추고, 결정은 늦고, 책임은 아래로 떨어집니다.
위에서는 말이 오가고, 아래에서는 사람이 버팁니다.
필요한 것은 항상 모자라죠.

가만히 있어도 변명 하나쯤은 저절로 생기는 조건입니다.
“어쩔 수 없었다”라고 말하기에 너무 좋은 환경이죠.

그런데 이순신은 그 말을 끝내 하지 않았습니다.

나라가 무너져도,
지원이 끊겨도,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도
그는 단 한 번도 상황을 탓하는 문장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대신 늘 같은 행동을 반복했습니다.

식량을 모으고,
소금을 구워 군자금을 만들고,
지형을 조사하고,
배를 고치고,
병사들을 훈련시키는 일.

거창한 기적 대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처리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순신 장군을 이렇게 부르고 싶습니다.
‘핑계가 없었던 사람’.

시스템이 무너진 자리에서도
“그래도 나는 내 일을 한다”라고 말한 사람.

어쩌면 우리가 지금도 이순신을 찾는 이유가 거기에 있을 겁니다.
천재라서가 아니라,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끝까지 자기 책임을 내려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태도야말로 우리가 가장 따라 하기 어려운 능력이니까요.

 

 

 

 

 

5. 당신의 바다 위 열두 척은 무엇입니까

 

이순신처럼 살자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솔직히 너무 가혹하기 때문이죠.

대신 이렇게는 말할 수 있겠습니다.

도망치지 않기
핑계 줄이기
오늘 할 일 하나는 끝내기
그리고 기록하기

거창하지 않습니다.
하루치 책임감이면 충분합니다.

어쩌면 이순신의 삶도
거대한 영웅담이 아니라
‘평범한 하루를 끝까지 버틴 기록’이 10년 쌓인 결과였을지 모릅니다.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싶습니다.

지금 내 앞에 배가 12척만 남아 있다면,
나는 여전히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을까.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도 등불을 켜는 건 상황이 아니라 태도입니다.

그가 남긴 것은 승리의 숫자가 아니라,
끝까지 자기 자리를 지킨 한 인간의 존엄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마,
우리에게도 아직 몇 척쯤은 남아 있을 겁니다.

중요한 건,

그 배를 어디로 돌릴지 결정하는 일이 결국 우리 자신의 몫이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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